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단 편집) === 카탈루냐 반란(수확전쟁) === [[30년 전쟁]](1618~1648) 막바지인 1635년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일어났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던 스페인 중앙정부는 프랑스와 국경과 맞닿은 카탈루냐 지방에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군대를 주둔시키고 현지에서 물자를 징발했다. 이러한 조치는 [[펠리페 4세]]의 신임을 받던 재상 올리바레스 공작 [[가스파르 데 구스만]]에 의해 취해진 것이었다. 올리바레스는 '공평한 과세' 부과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동안 스페인 제국의 군사 활동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거의 전적으로 카스티야가 짊어졌는데 올리바레스는 이 문제를 바로잡아 이제는 왕국 전체가 보다 '평등한 군사적 부담'을 지도록 과세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카탈루냐에서도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물자를 징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말만 공평이고 평등이지 안그래도 메마르고 황량한 곳에 그나마 중세 양모산업으로 부흥했던 카스티야 경제가 스페인 왕실의 지속적인 착취로 박살나서 몰락하다 보니 그냥 착취할 대상을 카탈루냐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침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스페인 군대는 프랑스와의 국경지대인 카탈루냐에 주둔하며 물자를 징발했다. 그러자 카탈루냐 농민들이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1640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를 수확전쟁(Guerra dels Segadors)이라고 부른다.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제네랄리타드를 이끌던 카탈루냐 귀족 지도자들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아예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기로 결의하고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프랑스군]]이 카탈루냐로 진주했고 곧 [[스페인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사태는 점차 묘하게 꼬여갔다. 카탈루냐 귀족들은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에게 자신들이 그때까지 유지해 왔던 봉건적 특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재상 [[리슐리외]]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중앙집권적 절대왕정을 추구하던 프랑스 왕정에게 자치권이나 봉건적 귀족 특권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프랑스 왕정이 절대왕정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것은 지방의 봉건 영주들이었다. 프랑스 왕정은 지방 귀족들의 봉건적 특권을 빼앗고 그들을 왕권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중앙귀족화시키는 과정에서 지난한 노력과 희생을 치러 왔다. 이랬던 프랑스 왕국이 카탈루냐 귀족들의 봉건적 특권을 용인해 줄 리는 추호도 없었다. 한편 카탈루냐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자신들이 카탈루냐를 구해주러 왔다면서 갑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의 갑질 속에서 카탈루냐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절대왕정을 구축했던 프랑스의 통치 시스템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통치보다 훨씬 가혹하고 엄격하게 통제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카탈루냐인들은 점차 프랑스에 대해 회의를 가졌고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카탈루냐의 귀족 지배층과 농민층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처음 반란을 일으킨 카탈루냐 농민들의 이해관계는 카탈루냐 귀족 지도자들과는 달랐다. 카탈루냐 정치 지도자들은 봉기한 농민들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반란이 진행됨에 따라 상황이 엄하게 돌아가는 꼴을 본 카탈루냐 농민들은 귀족 지도자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카탈루냐 농민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카탈루냐를 프랑스에 갖다바쳤다가 더 엄한 사태를 초래한 귀족 지도자들을 원망하게 된다. 결국 농민들의 칼끝이 점차 귀족 지도자들을 겨누었다. 한편 카탈루냐인들이 점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프랑스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러 왔더니 오히려 쌩까는 모습을 본 프랑스군은 크게 실망하여 카탈루냐에서 스페인과 싸우려는 의욕도 상실해갔다. 차차 프랑스군은 수세에 몰렸고 마침내 프랑스 정부는 카탈루냐에서 프랑스군을 철수시켰다. 곧 스페인 중앙군이 바르셀로나를 포위하여 공성전에 들어갔고 카탈루냐는 결국 스페인 중앙군에 항복했다. 그러나 아직 프랑스-스페인 전쟁 와중이었기 때문에 반란이 진압된 후에도 카탈루냐는 계속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보장받는 등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1659년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피레네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에 의해 피레네 산맥 이북에 있는 스페인 영토가 프랑스에 할양되었고 피레네 산맥 이북에 있는 카탈루냐의 영토 역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의 [[피레네조리앙탈]](Pyrénées-Orientales) 지역[* 또 다른 말로는 [[카탈루냐델노르트]]라고도 불리며 프랑스의 베테랑 골키퍼 [[위고 요리스]]도 이 지역 혈통이다.]이 이때 할양된 카탈루냐의 땅이다. 과거 프랑스에 병합된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피레네조리앙탈 지역 역시 카탈루냐어의 사용을 금지당하고 프랑스어의 사용을 강요당하여 프랑스어 사용 지역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